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 야고보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대 야고보(이하 야고보)는 제베대오와 살로메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로, 동생 [[사도 요한]]과 함께 아버지를 도와 [[갈릴래아 호|갈릴래아 호숫가]]에서 어부로 일하고 있다가 예수를 만나 같은 직업의 다른 형제인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함께 그의 부름을 받았다. 예수의 부름을 듣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갔다([[마태오 복음서]] 4:21-22). ([[사람을 낚는 어부]] 참조) [[성령]] 강림 이후 다른 사도들처럼 야고보 역시 [[사마리아]]와 유대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으며, 심지어 이베리아 반도까지도 다녀갔다는 전승도 전해진다.[* 그리스도교 초기 전승에 따르면 대 야고보는 순교 전 예루살렘을 멀리 떠난 적이 없다. 스페인은 유대 지역에서 너무 멀 뿐더러 바오로 또한 로마서에서 스페인을 ‘다른 사람이 기초를 세우지 않은’ 지역이라고 언급하는 등 야고보의 이베리아 전도는 9세기 이후 후대의 창작이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.] 44년 [[예루살렘]]에서 그리스도인을 탄압하던 [[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]]에 의하여 체포되어 파스카 축일 전날 참수형으로써 39세의 나이로 [[순교]]하였다. 야고보의 유해는 처음에는 [[예루살렘]]에 안장되었으나, 정확히 어디에 묻혔는지에 대해서는 행방이 묘연하여 찾을 길이 없었다. 그러던 중 9세기 즈음에 하늘에서 한 별빛이 내려와 숲 속의 한 동굴을 비추어 사람들이 그 안으로 가보니 야고보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. 그 후 야고보의 유해는 에스파냐의 서북부 지역 갈리시아의 현 [[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]][*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스페인어식 표기이다.]로 이장되어 모셔졌고, 당시 국왕 알폰소는 그 묘지 위에 150년에 걸쳐 웅대한 [[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]]을 건축하였다.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의 유골함이 전시되어 있다. 그 후 844년 이베리아 반도에 세력을 뻗친 [[이슬람교]] 세력에 [[가톨릭]] 세력이 대항하기 위하여 일어난 클라비호 전투에서 야고보가 에스파냐군 앞에 나타나는 기적을 일으켜 말 탄 전사 형상으로 나타나 이슬람군을 무찔렀다는 말이 전해진다. 그에 대한 신심으로, 대 야고보는 에스파냐의 [[수호성인]]이자 [[레콩키스타]]의 상징이 되었으며, 에스파냐를 중심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금세 세계적인 순례지[* [[가톨릭]] 3대 [[성지]]라 하면 [[예루살렘]], [[로마]], 그리고 [[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]]를 꼽는다.]가 되었다. 이 순례길을 [[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]]라고 하며 현재도 인기있는 순례자 코스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